마음으로 밖에 할 수 없었던 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의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서 너 명 정도 되는 어린 아이들이 통일노래를 부르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지만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한 움큼 걸려 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어렴풋이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 애쓰면, 거리의 가게 유리창으로 내 모습이 비춰져 있다. 나는 많이 자랐다. 짧은 머리는 수없이 길게 길러 보았고, 화려한 세일러문 그림이 그려진 필통 대신 간소한 노란색 바탕의 필통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학교를 갔다 오면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골목 구석구석을 숨는 일 대신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에 갔다. 지난 몇 년의 세월 동안 나는 그렇게 많이 자라 있었다. 간혹 어쩌다 어릴 적의 사진을 보기라도 하면 이게 나인가 하는 의구심을 새겨 볼만큼 변했다. 그래서 일까? 세월이 가져다 준 변화는 내 생각의 테두리도 조금씩 바꾸어 놓고 있었다.
“북한은 정말 이기적이야.”
중학교를 올라와 내가 도덕시간에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북한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다.’
“정말. 통일 같은 거 안 해도 우린 잘 살 수 있잖아 안 그래?”
“맞아. 북한은 너무 패쇄적이야.”
“어차피 갈라졌으니 다른 나라지 뭐.”
반 안에서 통일을 원하는 아이들이 불과 몇 명이나 될까. 학교에서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숫자가 많은 쪽으로 흐른다. 많은 쪽이라 하면 통일을 반대하고 북한을 싫어하는 쪽이다. 처음엔 통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6.25전쟁과 핵 문제 등, 뉴스로 보도되는 북한의 모습은 좋은 모습이라기보다는 위협적이고, 꽉 막혀 있었다. 그런 매체들을 접하면서 또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은 우리나라와는 먼 나라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왜? 우리는 지금도 혼자서 충분히 잘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야. 왜냐하면 그들은 이기적이거든. 성격이 극과 극인데 어떻게 같은 민족이라는 거야?”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낳는다. 북한에 대한 말들이 오고가면 오고 갈수록 북한에 대한 인식 역시 나빠져만 갔다.
“오늘은 통일에 대해서 배울 거야. 다들 책 펴라.”
마지막 교시 도덕. 교과서를 넘겼다. 그런데 사진 중에 우리나라의 합창단과 북한의 합창단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 왔다. 누군가를 의식해서가 아닌, 그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 울고 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왠지 알게 모르게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고작 사진 한 장 가지고. 나는 애써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얼른 다음 장으로 넘겨버렸다. 책장을 넘기고 나서도 묘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은 기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머릿속에서 사진이 떠나질 않았다.
“통일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 설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은…….”
선생님의 말이 귓가에 조금씩 스며든다. 북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듣지 않으려 했는데, 북한에 대해 조금씩 궁금해졌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틀어져 버린 것일까…….
선생님은 컴퓨터로 어느 동영상을 하나 틀어 주셨다. 동영상은 재생이 되자마자 울음소리로 교실 전체를 뒤 흔들었다. 너무 놀라 화면을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니 남과 북으로 갈라라져 만나지 못했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장면들이 보였다. 젊을 때 헤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반쪽 같은 가족을 찾은 사람들은 세월의 눈물을 다 쏟아 낼 것처럼 울었다. 동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장난을 치던 아이들도, 잠을 자던 아이들도, 모두 이산가족의 동영상에 진지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그 중에 몇 명 훌쩍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북한은 우리와 상관없다고 고개를 돌렸는데, 왜 이 동영상을 보고 눈물이 맺히는지 모르겠다. 분명 서로 맞는 것이 하나 없는데…….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전쟁으로 인해 겹쳐지고 겹쳐진 오해들이 서로간의 벽을 만들고,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다. 수십 년 동안 같은 민족이 같은 하늘아래에 있으면서 서로 등을 돌린 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었을까.
가족이다. 한반도는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진 우리나라의 보물이다. 모두가 함께여서 이 땅을 지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함께한 역사는 흐릿한 핏방울의 흔적이 되어 박제되어 버렸다. 역사는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오늘까지 왔다,
한반도는 끊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한민족이 살아간다. 무구한 역사의 땅 위에서. 조금만 다가서자. 많은 걸음도 바라지 않는다. 서로를 위해 한 발 자국씩만 다가서자. 그 마음은 분명히 와 닿는다. 진심으로 다하면 고개를 돌린 북한도 반듯이 돌아서서 바라 볼 것이다. 한민족 이니까. 화해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기 위한 것이다.
마음으로 밖에 할 수 없었던 말… 한민족. 이제는 서로를 등 돌릴 것이 아니라 바라보자. 두 눈을 마주하고 닫혀 있었던 마음을 열어보자. 어쩌면 높이 쌓아 올렸던 편견의 벽이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무너질 수 있을 지도 모르니… 우리는 여태껏 진심으로 바라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오히려 더욱 북한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통일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뼈아픈 역사의 세월을 위해서라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들을 위해서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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